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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티앙]동물도 생각한다.

[페티앙 2005년 1_2월호]

동물도 생각한다.

Amazing ability of animals

글 : 동물칼럼니스트 김소희, 애니멀파크(www.animalpark.pe.kr)

우리 현대인은 푸른 숲 대신 콘크리트 밀림 속에 살고 있다. 때문에 좀처럼 동물을 가까이 접해 볼 기회도 없다.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고, 또 두렵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야생동물은 같은 어머니, 가이아(GAIA)의 품에서 태어난 형제 같은 존재였다. 선인들은 동물의 행동을 통해 수많은 지혜와 배움을 터득했고 이를 자손들에게 물려 주었다. 특히, 우리 조상은 콩 한 알을 심어도 세 알을 심었다고 한다. 한 알은 농부의 몫으로, 또 한 알은 날짐승을 위해, 나머지 한 알은 길짐승을 위해!

역사 속에 그대로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던 동물들의 위대한 지혜는, 오늘날 동물 행동학자들에 의해 다시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동물도 인간처럼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놀이를 즐기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은 물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동물들의 지혜로운 먹이 사냥법 및 갖가지 속임수를 이용한 자기보호법을 통해 ‘동물도 사고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얼음판을 서핑보드 삼아 바다를 누비는 북극곰


포근함 혹은 사랑스러움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북극곰은 사실 동물의 왕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맹수다. 영하 40-50도의 추위를 견디게 해 주는 두꺼운 지방층은 끊임없이 먹어야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북극곰은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바다표범에게 접근할 때 자신의 냄새가 퍼지지 않도록 얇은 얼음장을 들어 바람막이로 이용하기도 한다. 바다표범이 눈치챘다 싶을 땐 ‘얼음 땡’ 놀이도 한다. 마치 거대한 얼음 덩어리인냥 꼼짝 않고 멈춰서는 것이다. 설마 바다표범이 이 거대한 포식자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할까 싶겠지만, 설원 한 복판에 서 있는 북극곰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때문에 영리한 북극곰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달리 유독 까만 자신의 코나 눈을 앞발로 가린 채 먹이에 접근하기도 한다.

때로는 천하의 북극곰도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싫을 때가 있을 터. 그럴 때면 바닷물에 떠다니는 적당한 크기의 얼음을 서핑보드 삼아 타고 다니면서 헤엄치고 있는 물개 등을 잡기도 한다.

더 재미있는 방법은, 앞발에 몸무게 전체를 실어 얼음을 깨부순 뒤, 하염없이 그 구멍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물 속을 헤엄치다 숨을 쉬기 위해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물개를 잡으려는 속셈. 또, 사냥감을 향해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집어 던져서 상처를 입힌 후 손쉽게 사냥을 하기도 한다.


공기 방울을 이용해 물고기를 사냥하는 혹등고래


인간 다음으로 지능이 뛰어나다고 밝혀진 돌고래는, 초음파를 쏜 뒤 그것이 전방의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현상을 통해 지형 및 장애물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이를 통해 모래 속에 숨어있는 물고기의 형상까지도 알 수 있다. 바다 속 모래 안에 몸을 꽁꽁 숨긴 물고기를 일일이 주둥이로 파내어 먹으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때문에 돌고래는 강한 초음파를 쏘아 먹이감을 실신시킨다. 기절해서 모래 밖으로 떠오르는 순간 먹이를 먹는다. 또 어떤 돌고래는 물고기를 놀라게 한 뒤, 놀란 물고기가 물 밖으로 뛰어올랐다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해 잡아 먹기도 한다. 아마존강 유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수 천년 전부터 돌고래의 이런 습성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았다.

한편, 몸길이만 13-15m에 이르는 혹등고래는 공기방울로 물고기를 사냥한다. 이들은 이빨이 없는 대신 입 안의 수염을 이용해 물은 걸러내고 먹이만 삼키는데, 덩치답지 않게 아주 작은 물고기떼나 크릴 새우만을 먹고 산다. 몇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다가 새우떼나 작은 물고기떼를 만나면 그 주변을 에워싸고 둥그렇게 돌면서 뽀글뽀글 공기방울을 만든다. 이 공기방울로 만든 그물 속에서 물방울들이 터지며 생겨나는 폭폭폭~ 소리에 정신이 팔려 우왕좌왕하는 틈을 이용, 한 입에 먹이떼를 집어삼킨다. 이 방법으로 한 번에 2톤 가량의 크릴 새우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낚시하는 새


이번에는, 새 이야기. 북부 그리스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하늘에서 떨어진 지뢰에 맞아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그 지뢰라는 것은 바로 거북이였다. 이 지역에 사는 검은 독수리들의 주먹이는 육지거북인데, 제 아무리 강한 부리와 발톱도 거북의 등껍질을 깨기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독수리는 거북을 움켜진 채 하늘로 날라올라 높은 상공에서 떨어뜨린 후, 산산조각 난 거북의 살코기를 꺼내먹는다. 수염수리 역시 사냥한 먹이감의 골수를 먹기 위해 뼈를 높은 곳으로 물고 올라간 뒤 바위 위로 떨어뜨린다.

또, 이집트 민독수리도 단단한 타조의 알을 깨기 위해 적당한 크기의 돌을 입에 물고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내리친다. 알을 깨기에 적당한 모양이나 크기의 것을 찾기 위해 5km밖에서 돌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한다.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는 선인장 가시나 작은 나뭇가지를 골라 부리에 문 채 마치 포크처럼 이용해 나무 틈새의 벌레를 찍어 먹는다. 경우에 따라 물기 편하도록 가시나 나뭇가지를 짧게 꺾거나 뾰족한 부분을 자르기도 하며, 마음에 들면 한 동안 발에 쥐고 다니기도 한다. 오리건주의 한 벼랑 끝에 살고 있는 갈가마귀는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 주변의 흙 속에 묻힌 적당한 돌멩이를 파낸 뒤 입으로 물고 올라가 침입자에게 떨어뜨린다.

아메리카 알락해오라기(green heron)는 낚시도 한다. 어디선가 가져온 빵부스러기나 작은 돌멩이, 나무조각 등 가짜 미끼를 수면 위에 떨어뜨린 후,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돌로 열매를 깨는 침팬지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발표를 해서 전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제인 구달로부터 이 사실을 처음 보고 받은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인간이 재정의 되어야겠군’이라고 말했다 한다. Homo Faber!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위대한 인간뿐이라고 알려졌었으니 말이다. 침팬지는 돌을 이용해 딱딱한 열매를 깨어먹는데, 열매의 크기나 모양, 단단한 정도에 따라 300g- 20kg까지 다양하다. 열매 아래 단단한 받침대로 삼을 만한 돌판이 부족할 경우엔 줄을 서기도 한다. 침팬지들은 적당한 힘으로 내리쳐야 껍질 안의 열매가 완전히 부스러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으며, 새끼는 어미의 모습을 잘 보고 이를 배운다. 지역에 따라 돌을 전혀 이용할 줄 모르는 침팬지 무리도 있다.

또, 침팬지는 물을 마시기 위해 나뭇잎을 씹어서 뱉은 후 그 것을 물에 적신 후 빨아먹는다. 즉, 스펀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흰개미를 잡아먹기 위해 흰개미 집 안에 얇은 나뭇가지를 넣었다 빼는데, 경우에 따라 나뭇가지의 굵기와 유연성, 길이를 조절한다. 물론 나뭇잎은 모두 깨끗이 떼어낸다. 집어 넣었다가 뺄 때는 조심스럽게 힘 조절을 잘 해야 개미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옆에 있는 물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직접 제작하고 적당히 다듬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군락의 침팬지들은 일종의 송곳막대로 흰개미 둔덕에 큰 구멍을 내어 접근하기 쉽도록 만든 후에 개미사냥을 한다고 한다. 그 밖에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에 묻은 오물이나 과일즙 등을 닦아내기도 한다.

또, 99년 우간다 키베일 숲에서는 리처드 랭험 박사팀에 의해 막대기로 암컷을 구타하는 수컷 침팬지의 모습이 관찰되어 인류학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 때까지 도구를 이용해 상대방을 구타하는 것은 사람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맥주병으로 조개를 깨먹는 해달, 자기꼬리로 낚시하는 재규어

해달이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드러누워 가슴에 돌을 올려놓고 조개를 두드려 깨뜨려 먹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전복이나 조개 등이 바다 속 바위에 너무 단단히 붙어있을 경우, 적당한 크기나 모양의 돌을 찾아내 두드려서 전복을 떼어낸다고 한다. 해달은 신나게 놀다가도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하면 그 것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둔 채 때에 따라 상당히 오랫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한다고 한다. 돌 대신 떠내려온 맥주병을 사용하는 해달도 보고된 적이 있는데, 이는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지 않아도 항상 물에 떠 있다는 편리함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키가 큰 해초를 몸에 둘러 몸을 고정시키기도 한다. 또, 맥주병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문어를 꺼내 먹기 위해 열심히 맥주병을 흔들고 있는 해달이 발견되기도 했다.

족제비, 흰담비, 여우는 최면을 걸어 사냥감을 잡기도 한다. 직접 사냥감을 쫓아서 잡는 것이 아니라 사냥감 주변에서 폴짝폴짝 뛰었다가 굴렀다가 이리저리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왔다갔다 거린다. 그러면 거의 최면상태에 걸린 듯, 이 모습에 얼이 빠져 멍한 상태에 있는 토끼, 다람쥐, 까치 등의 사냥감을 잡아 먹는다.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냥감들도 있지만, 학자들은 이 행동을 ‘죽음의 춤’이라고 부른다.

재규어는 날쌔고 용맹한 사냥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을성있는 낚시꾼이기도 하다. 물가에 앉아 자신의 꼬리를 물 속에 담근 채 살랑살랑 흔들어대면서 한정없이 물고기를 기다린다. 간혹 물고기들을 모으기 위해 꼬리로 수면을 탁탁 치기도 하면서 말이다. 살랑대는 꼬리에 호기심을 느낀 물고기가 접근해 오는 순간, 날카로운 발톱으로 물고기를 낚아챈다.

마다가스카르 정글에 살고있는 아이아이(aye-aye : 원시적인 원숭이류의 하나. 끔찍한 생김새 때문에 악마 취급을 받은 이들은, 원주민들의 무자비한 학살로 인해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놓여있다)는 길고 가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나무를 톡톡톡 치면서 그 울림 소리를 통해 애벌레의 위치를 알아낸다. 속이 빈 곳과 애벌레가 있는 곳은 소리가 다르게 난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애벌레의 위치를 파악하면 긴 손가락으로 나무를 후벼 판 뒤 손가락 끝의 갈고리로 애벌레를 꺼내 먹는다.


약초를 이용해 스스로를 치료하는 동물들
쓰고 거친 풀을 삼켜 기생충을 제거하는 침팬지, 개미의 공격을 즐기는 새


인도의 코끼리 사육사들은 코끼리가 어딘가 아프면 숲으로 데려간다. 코끼리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약초와 식물을 선택해 먹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약초를 사용하게 된 것은, 병들었던 동물이 특정 식물을 찾아먹고 완쾌된 것을 목격하면서부터 이다. 때문에 약초나 식물의 이름 중에는 개밀(dog grass), 토끼상추(hare’s lettuce), 개박하(catnip) 등 그 것을 먹는 동물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중국에서 구전되는 이야기 하나. 장기간 계속되는 전쟁 속에 수많은 병사와 말들의 체력이 극도로 떨어졌고, 급기야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올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유독 자신의 말만 건강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한 병사가 이를 유심히 살핀 끝에 그 말이 질경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도 질경이를 끓여먹자 소변에서 피가 사라졌고, 결국 이 방법을 이용해 모든 병사와 말들이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질경이는 오늘날에도 염증을 예방하고 이뇨작용 및 항균 작용을 돕는 약초로 이용되고 있다.

야생에서는 코끼리, 고릴라, 원숭이, 페커리, 앵무새 등이 진흙을 파먹는 모습이 관찰되는데, 학자들은 그 점토가 각종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음은 물론 유독 물질을 중화시켜 복통 및 설사에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고릴라는 일부러 맛없는 화산암 가루를 찾아먹고는 철분을 얻어 빈혈을 치료하기도 한다.

한편 야생 동물들은 우연히 벼락을 맞은 나무나 산불이 발생했던 곳으로 몰려가 숯을 먹는데, 숯이 체내의 독소를 흡수해 주기 때문이다. 붉은 콜롬부스 원숭이는 일부러 원주민의 집안까지 잠입해 화로에서 숯을 훔쳐가고, 곰베의 침팬지도 어부의 오두막에서 재를 훔쳐 먹는다. 바하마 갈가마귀는 연기의 그을음을 이용해 깃털을 청소한다. 담뱃불이나 화로의 불씨를 물고 달아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불새의 전설이 생겼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침팬지는 30종이 넘는 약초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스필리아 잎은 맛도 쓰고 영양가도 없지만, 표면이 거칠고 날카로워서 장내 기생충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준다. 그러려면 잎의 거친 잔털이 그대로 남은 상태로 흡수되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 사실을 잘 이해하는 침팬지는 잎을 둥그렇게 말아 입 안 넣은 후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킨다. 또, 엄청나게 쓰고 독성이 있어서 원주민들이 염소를 죽이는 풀이라고 부르는 베르노니아 잎도 먹는데, 체내 기생충을 죽여주고 복통에도 효과가 있다. 이런 약초들은 이 지방 원주민들도 사용하고 있다. 너무 맛이 써서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이런 약초를 삼키고 있는 침팬지의 모습을 보면, 이 것이 배를 채우기 위한 에너지원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산 떼가마귀(European rook)는 일부러 개미집을 덮친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양날개를 좌악 편 채 수십, 수백마리의 개미떼로 하여금 자신의 날개를 물게 하는데, 이 때 난산되는 포름산을 이용해 진드기나 기생충도 죽이고 깃털 손질도 한다. 이 개미 목욕을 하는 새로는 앵무새, 딱따구리, 수리부엉이 등을 비롯해 약 250여종이 있다.

또, 찌르레기(starling)는 특정 약초를 이용하여 새끼들의 면역 체계를 향상시켜주는 독자적인 아로마 요법을 개발해 냈는데, 이는 성장 속도 및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줘서 새끼들의 첫 해 생존율을 2배까지 증가시켜준다고 한다. 아프리카 검은 독수리도 벌레, 진드기, 해충 등을 막기 위해 특정 풀잎을 새끼들이 있는 둥지로 가져간다.

속임수를 쓰는 동물들
죽은 척하는 주머니쥐와 거짓말하는 침팬지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개구리를 눕혀놓고 배를 살살 문지르자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 축 늘어져 버리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두꺼비 등도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데, 이렇게 위협을 느끼거나 특정 자극을 받으면 죽은 척 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실신 상태가 돼버리는 동물들이 꽤 많다. 학자들도 아직 정확한 매커니즘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생존본능, 즉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한다.

Playing possum! 이란 말이 있다. ‘죽은 척하다’ 란 의미인데, 바로 주머니쥐의 재미있는 행동에서 유래된 말이다(이런 현상을 “타나토시스(thanatosis)”라 부른다). 적을 만난 주머니쥐는, 처음엔 나름대로 이빨도 갈고 사나운 소리를 내며 상대를 위협하다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갑자기 풀썩 쓰러져 죽은 척을 한다. 물론 진짜 실신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인데, 그 모양을 보면 영락없이 ‘진짜 죽었다!’ 싶을 만큼 리얼하다. 입을 벌려 혀까지 빼물고, 항문샘에서는 녹색 액체를 배출해 시체 썩는 냄새까지 풍긴다. 미심쩍어 하는 적이 물거나 발톱으로 움켜쥐더라도 꼼짝하지 않는다. 상대가 포기하고 자리를 뜨면 그제서야 살아난다. 학자들이 뇌파 측정을 했더니 죽은 척 하고 있을 때의 뇌파 상태가 정상 상태일 때와 동일했다 한다. 또한 전체 주머니쥐의 약 10-20%만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 최고 6시간 동안 기절한 척 한 경우가 보고 되어 있다.

독성이 없는 몇 마리의 뱀들도 적을 만나면, 처음엔 공격자세를 보이다가 여의치 않다고 판단되면 갑자기 배를 뒤집은 채 심한 상처라도 입은 듯 몸부림을 친다고 한다. 점점 연기력이 무르익은 뱀은 입에서 진짜 피까지 흘린다고 한다. 적이 사라지면 즉시 정상으로 돌아가 도망쳤다고 한다.

물떼새는 둥지에서 새끼들을 품고 있다가 여우 등 포식동물이 접근해 오면 저만치 날아가 갑자기 날개가 부러져 잘 날지 못하는 흉내를 내며 퍼덕거린다. 그러다가 별 어려움 없이 먹이를 잡겠다고 생각한 여우가 가까이 다가오면 잽싸게 날아올라 몸을 피한다. 새끼를 구하기 위한 속임수이다.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 동물원에 살고 있는 오랑우탄 푸 맨츄는 경비원이 마지막 순찰을 끝낼 때 까지 기다린 후 우리문을 열고 나와서 다음날 아침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보냈다. 관계자들에게 남겨진 의문점은 열쇠를 부수려 했던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일이 반복되자 결국 몸수색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자 푸 맨츄의 입술과 잇몸 사이에서 철사로 만든 열쇠가 발견되었는데, 직접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들키지 않고 열쇠를 숨길만한 바로 ‘그’ 장소를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뉴욕 주립대학의 에밀 멘셀 박사는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했다. 먹이를 넓은 지역 한군데 숨겨 놓은 뒤 침팬지 무리 중 한 마리에게만 그 장소를 보여주었다. 잠시 후 다른 나머지 침팬지를 같이 풀어주었는데, 먹이의 위치를 아는 유일한 침팬지는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침팬지들이 가까이 있을 때에는 먹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또, 데이비드 프레맥 박사는 언어 훈련을 받은 침팬지들을 대상으로 한 단계 높은 실험을 해 보았다. 침팬지가 실험자에게 먹이가 숨겨진 장소를 말해주었는데 만약 실험자가 그 먹이를 혼자 먹어버린 경우, 침팬지는 그 후로 실험자에게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었다. 즉, 침팬지는 소중한 먹이를 나눠 먹지 않고 독식하는 자들(침팬지든 사람이든)에게는 의도적으로 먹이 위치를 속이거나 알려 주지 않았다.

제인 구달 박사도 비슷한 사례를 경험했다. 침팬지에게 혼자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바나나를 주었다. 그러자 그 침팬지는 바나나를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놓고 조금씩 꺼내 먹었다. 침팬지 친구들이 바나나가 어디에 있냐고 아우성을 치자 그는 손가락으로 정반대 쪽을 가리켜 속인 뒤 재빨리 숨겨놓은 곳으로 가서 바나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한다.

결론부
무의식 중에 사람들은 야생 동물은 그저 먹고, 자고, 배설하고 번식하는 일(지극히 본능적인)만 하도록 설계된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동물원을 찾은 아이들이, 좁은 철창 속에 갇혀서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똑같은 행동만을 반복하거나 혹은 배설물 위에서 뒹구는 동물을 보고 ‘멍청하긴, 바보자식, 더러워!’ 라고 놀려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 없다. 우리 위대한 인간도 극히 한정된 공간 및 자원 하에 놓이면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니 말이다. 이를 감안해 보면 어쩌면 동물원의 동물들은 무늬만 동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위의 글에서처럼 비록 척박하긴 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야생 동물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고, 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 더 큰 고통도 참을 줄 알며, 때에 따라 귀여운 속임수도 사용할 줄 아는 동물들. 특히,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인간 역시 최초에 어떤 필요에 의해 혹은 우연한 경험에 의해 미미한 수준의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것이 곧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적 진화 및 감각 기관과 지능적 메커니즘의 발달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위의 행동들은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모든 개체에게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개체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 속에 입력 되어있는 본능적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 행동학자들은 이것이야말로 동물들이 저마다 ‘독립된 사고’를 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생각하는 동물들! 어머니, 가이아의 품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 하루 빨리 그들의 생각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따스한 형제로 되돌아가야 할 때 이다. 더 늦으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지도 모른다.

글 : 동물칼럼니스트 김소희,

애니멀파크(www.animalpark.or.kr)

[페티앙 2005년 1_2월호]


참고문헌
Dr. Karl P.N.Shuker, the hidden powers of animals, 2001
Donald R. Griffin, animal thinking, 1984
Jeffrey Moussaieff Masson and Susan McCarthy, when elephants weep, 1995. Tamsin Constable, chimpanzees, 2000.
제인구달, 인간의 그늘에서, 사이언스북스, 2001.
비투스 B. 드뢰셔, 휴머니즘의 동물학. 이마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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