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칼럼니스트
동물칼럼 (259)
나 혼자 수다 (9)

동물칼럼 > 동물칼럼
[동아일보]주검 없는 죽음은 더욱 슬프다

[동아일보. 2004.3.21]

주검 없는 죽음은 더욱 슬프다

3월 11일의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한강에 투신한 한 기업체 사장의 시신이 며칠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익사나 비행기 추락사고 등으로 시신조차 찾을 수 없다면 더욱 슬픔에 빠지게 된다.

인간에 비할 바 아닌 짐승들에게조차 주검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강을 건너다가 악어의 습격으로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누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며칠씩 새끼를 찾아 헤맨다. 새끼는 이미 악어 밥이 돼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새끼의 주검을 확인한 경우에는 매정하다 싶을 만큼 미련 없이 떠난다.

생태학자 앤디 베크는 뉴질랜드의 말 농장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새로 태어난 망아지가 죽을 경우 질병 예방 차원에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 사체를 치우는데 그때 어미 말들은 극도의 비탄에 빠진 채 거칠게 울며 심한 몸부림을 쳐댔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밤중에 망아지가 죽었을 경우엔 사체를 치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어미 말들은 눈앞에서 망아지 사체를 치워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뒤 농장측은 망아지가 죽으면 의도적으로 어미 말이 죽은 새끼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러면 어미 말은 새끼의 주검이 사라져도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주검을 통해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쇼크 부정 분노 슬픔 그리고 수용이라는 심리적 변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주검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이 들며, 그 만큼 슬픔과 고통도 오래 지속된다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투신한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들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시신이 발견되기 바란다.

글 : 동물칼럼니스트 김소희, 애니멀파크(www.animalpark.pe.kr)
[동아일보, 2004년 03월 21일 (일) 22:41]





<추가 원고 - 주검없이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물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새끼들을 숨겨놓았던 풀숲에서 어슬렁대고 있는 사자를 발견한 어미 치타. 어미치타는 자신이 절대 사자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새끼를 지키기 위한 일념에 목숨을 걸고 사자를 유인해 따돌린다. 새끼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보금자리로 돌아온 후에서야 새끼들의 시체를 발견한 어미는 한참을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충분히 달릴 수 없는 어린 새끼가 있는 어미 가젤은, 적이 나타나면 새끼를 풀숲에 숨겨둔 채 스스로 맹수의 표적이 되길 자처한다. 이리뛰고 저리뛰며 치타를 유인해 보이지만 결국 치타에게 새끼를 빼앗기고 만 어미 가젤은, 물려가는 새끼를 보며 ‘흐응- 흐응-’하는 울음소리를 내다가 곧 자리를 떠난다.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동물, 개의 사례도 있다. 동물행동학자, 패트리샤 멕코넬이 접한 이야기로,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 가족에게는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골디라는 골든 레트리버가 있었는데, 골디는 오후만 되면 창문에 서서 자신의 어린 친구가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아이를 몇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고, 놀이를 하거나 산책을 나가는 것도 거부했다. 이런 행동은 반 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급기야는 음식마저 거부해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말이다. 아마도 아이의 주검을 확인하지 못했던 골디로서는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계속해서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인지도 모른다.

글 : 동물칼럼니스트 김소희,

애니멀파크(www.animalpark.or.kr)


글0개





매스컴 속 애니멀파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하루616 디지털 유산어워드 전시관으로 이동합니다.